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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 재테크

방치된 퇴직연금 깨우는 법 — 디폴트옵션과 자산배분으로 7~10%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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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내 퇴직연금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지?"라는 질문이죠. 실제로 최근 통계를 보면 퇴직연금 전체 수익률은 6.4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가입자 절반은 여전히 2%대 수익률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상위 10%는 평균 19.5%를 벌었습니다. 같은 제도, 같은 시장에서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입니다. 계좌를 방치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왜 이렇게 방치되는 계좌가 많을까

퇴직연금 제도가 처음 설계될 때부터 있었던 구조적 문제입니다.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적립금이 낮은 금리의 원리금보장 상품으로 자동 편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적립금의 상당 부분이 이런 저수익 상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입니다.

 

디폴트옵션이란 무엇인가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IRP 가입자가 일정 기간 동안 별도의 운용 지시 없이 방치하면, 가입자가 미리 지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먼저 도입돼 정착한 방식으로, 우리나라는 2022년 7월 법적으로 도입돼 2023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습니다.

절차는 이렇습니다. 신규로 적립금이 입금된 날로부터 일정 기간 안에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매수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적용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통지받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지시가 없으면 최종적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자동 전환됩니다. 즉,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이미 방치된 상태로 낮은 금리 상품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확인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입한 퇴직연금 사업자(은행·증권사·보험사)의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내 퇴직연금 운용현황"을 조회하면, 현재 어떤 상품에 얼마나 배분돼 있는지, 디폴트옵션이 지정돼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원리금보장형부터 저위험·중위험·고위험 포트폴리오, TDF(타깃데이트펀드)까지 여러 단계로 준비돼 있고, 그중 하나를 직접 선택해 지정할 수 있습니다.

 

목표수익률을 왜 7~10%로 잡아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몇 % 벌 수 있느냐"가 아니라 "몇 %를 확률 높게 벌 수 있느냐"입니다. 국내 자산배분 투자를 대중화한 전문가들의 접근이 참고할 만합니다. '박곰희TV'로 잘 알려진 박동호 대표는 두 자릿수 이상의 기대수익률을 좇는 것은 그만큼 손실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맞지 않는 방향이라 말하며, 주식과 채권을 나눠 담는 자산배분 전략으로 연 7% 수준의 수익률을 목표로 삼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대표적인 조합은 주식 60%·채권 40% 비율이나, 주식·채권·금·달러를 각각 25%씩 담는 영구 포트폴리오입니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대표 역시 국내 증시가 급등할 때일수록 오히려 자산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한 자산에 쏠린 투자가 조정 국면에서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를 반복적으로 짚어왔습니다. 연금 자산배분을 다뤄온 김성일 작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주식과 채권 등 서로 다른 자산군을 나눠 담아 변동성을 낮추는 방식을 오랫동안 제안해왔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한 자산에 몰아넣고 대박을 노리는 대신, 여러 자산에 나눠 담아 시장이 흔들려도 포트폴리오 전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것. 그래야 손실 국면에서도 계좌를 팔아치우지 않고 버틸 수 있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 효과가 쌓입니다. 확률 높은 7~10%를 꾸준히 쌓는 쪽이, 한두 해 반짝 수익을 내고 큰 손실로 되돌아가는 쪽보다 20년, 30년 뒤에는 훨씬 큰 자산으로 남습니다.

(※ 위 내용은 공개 강연·인터뷰·저술 활동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소개이며, 특정 상품이나 종목 추천이 아닌 자산배분이라는 투자 철학 소개 차원임을 밝혀둡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아야 할까

퇴직연금 계좌 안에서는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은 매수할 수 없고, 위험자산 편입 한도 등 별도 규제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산배분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조합입니다.

  • 주식 비중: 국내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인덱스 ETF와 미국 S&P500 등 선진국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나눠 담아, 특정 국가 한 곳에 쏠리지 않도록 합니다.
  • 채권 비중: 국내 국고채나 미국 국채를 추종하는 채권형 ETF로 안전자산 축을 만듭니다. IRP·DC 계좌로 개인투자용 국채도 직접 매입할 수 있어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대체자산: 금 ETF를 소액이라도 섞어두면 주식·채권이 동시에 흔들리는 국면에서 완충 역할을 합니다.
  • TDF(타깃데이트펀드): 자산배분을 직접 조정하기 번거롭다면, 은퇴 목표 시점에 맞춰 주식·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TDF를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하는 것도 합리적인 대안입니다.

비율을 정확히 맞추는 것보다 중요한 건, 특정 자산 하나에 전체를 몰아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20년, 시간이 만드는 차이

같은 1억 원이라도 수익률과 투자 기간에 따라 결과는 크게 갈립니다. 연 7%와 연 10%로 각각 굴렸을 때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 아래 계산은 운용보수와 세금이 미반영된 세전 기준 단순 복리 시뮬레이션이며, 실제로는 운용보수와 연금 수령 시 세금 등에 따라 실수령액은 다소 낮아집니다.)

투자 기간 연 7% 수익률 연 10% 수익률
10년 약 1억 9,700만 원 약 2억 5,900만 원
15년 약 2억 7,600만 원 약 4억 1,800만 원
20년 약 3억 8,700만 원 약 6억 7,300만 원
25년 약 5억 4,300만 원 약 10억 8,300만 원
30년 약 7억 6,100만 원 약 17억 4,500만 원

같은 원금이라도 20년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수익률 3%포인트 차이가 자산 규모를 크게 벌려놓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방치돼 1%대 원리금보장 상품에 머물러 있는 계좌는 이 표만큼의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정리하며

퇴직연금은 가입했다고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방치하면 방치한 만큼 기회비용이 쌓이는 계좌입니다. 오늘 당장 내 퇴직연금 앱에 들어가 운용현황을 확인하고, 디폴트옵션이 원리금보장형에만 머물러 있다면 자산배분형 포트폴리오나 TDF로 지정을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